'별별 며느리' 이창엽의 별 헤는 밤 [인터뷰]
Forest Ent
DATE : 17-11-30 17:31   HIT : 25

[티브이데일리 윤혜영 기자] 이를테면 말이 시각화되는 과정. 배우 이창엽의 화법은 사람을 이끌리게 하는 신묘한 '무언가'가 있었다. 말로 그림을 그려내는 느낌이랄까. 입에서 조곤조곤 꺼내져 나오는 말들은 그가 지나왔던 어느 한 때의 그림이 되어 듣는 이를 그 순간 속으로 초대했다. 자꾸만 그 그림에 머물고 싶어졌던 건 그 그림체가 한없이 낭만적이었기 때문이리라.

이창엽은 올해 조금은 특별한 월, 화요일을 보냈다. MBC 월화드라마 '별별 며느리'(극본 오상희·연출 이재진)에서 최한주(강경준)의 남동생 최동주로 분해 저녁 8시 55분 시청자를 만났고, 끝나자마자 곧바로 밤 10시, MBC 월화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극본 이선혜·연출 이동윤, 이하 '이소소')를 통해 한아름(류현경), 장지혜(장희령)와 러브라인을 형성한 이동훈 역으로 다시금 얼굴을 내비쳤기 때문.

2연속 월화드라마 덕분에 이창엽의 집은 해당 시간대만 되면 MBC로 채널을 고정했다. 특히 추석 연휴 기간, 부산 본집에서 마주한 부모님의 본방사수 장면은 괜스레 그를 뭉클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연기를 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요즘에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은 추석 때였어요. 촬영 때문에 딱 하루 비었는데 부산에 내려갔거든요. 이유는 하나였어요. 부모님이랑 같이 방송을 보고 싶어서. 제가 소파 뒤쪽에서 과일 먹으면서 앉아있고, 어머니 아버지가 TV 바로 앞에 앉아서 보시는 거예요. 뒤에서 봐도 되는데 아들 나오는 거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유난히 어깨가 축 처져 있는 그 뒷모습이 마음 아프다고 해야 할까요? 부모님의 어쩌면 당연한 무게인 거잖아요. 저 어깨에 더 힘이 될 수 있도록 더 좋은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명한 배우가 되지 않더라도 가치 있는 작업을 했을 때 부모님이 훨씬 더 행복해하실 것 같아서요. 이번에 작품 하면서 얻은 수확인 것 같아요. 큰 선물을 해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이창엽은 유난히 가족을 많이 언급했다. 오죽하면 인터뷰 말미, "혹시 못했던 말이 있느냐"고 묻자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을까. 이유가 있었다. 9살 터울의 누나를 둔 막내아들로 예쁨을 독차지하며 자란 그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기를 시작해 죄스러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대학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하셨는데 막상 대학을 가서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까 반대를 하시더라고요. 저는 하고 싶은 걸 못하니 우울해졌죠. 너무 간절하니까. 집에서 밥도 안 먹고 가만히 누워 있으니까 '무슨 일이니?' / '연기가 너무 하고 싶습니다' /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떠니?' 이런 얘기를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안 올라가면 죽는다' 싶은 거예요. 사랑니를 뺀 날이었는데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발음도 잘 안 되는데 '아버지 저 올라갈래요' 했죠. 어머니가 당황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너 지금 너무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다' / '많이 고민했고, 장난 아니고요. 내일 갈래요' / '내일 간다고?' 그때 담배를 피우시면서 '니 하고 싶은 거 해라' 하는 아버지의 슬픈 뒷모습. 연기가 자욱해지는 그 순간이 연기를 하려고 서울로 올라오는 날의 기억이거든요. 다음날 정말 바로 올라왔어요. 2층에 고시원을 구하고, 1층 호프집에서 알바를 했죠. 큰 결정을 지었던 저의 첫날이었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창엽의 어머니는 아들을 올려보낸 뒤, 남몰래 딸에게 전화해서 '너무 슬프다. 힘든 길을 가는데'라며 많이 울기도 했다고. 이창엽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는데 그 길을 선택하면서도 죄스러운 마음이 있으니까 뭘 하든지 '잘 해야지' '잘 돼야지' 그런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잘 산다는 것. 이창엽은 인생을 사는데 있어 '나답게 사는 것'에 가장 가치를 둔다고 했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나로서 말하기'가 가장 기본이었다"는 그는 취미로 쓰는 글에도 '나'를 녹인다고 했다. "영화과를 부전공해서 숙제로 글을 낼 때도 있는데 그때도 '나로서 말하기' '내가 생각하는 무언가'를 해요. 그러다 보니까 '나'라는 소재가 항상 빠질 수 없더라고요. 항상 나를 잃지 않는 것. 나로서 존재하는 게 지금의 화두인 것 같아요."

이창엽의 최근 화두는 또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북두칠성을 찾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 그는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더라"라며 "서울에서는 별을 찾기가 정말 힘들다. 부산에 가끔 가면 별이 보인다. 요즘엔 드라마 끝나고 쉬고 있지 않느냐. 서울은 밤하늘에 별이 잘 안 보여서 어떻게 볼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독특한 대답을 꺼내놨다.

그는 '별별 며느리' 종영 후 배우들끼리 다녀온 양평 1박 2일 MT에서도 별을 담았다. 한창 별에 꽂혀 있는 시기, 별이 너무 잘 보여서 선배들에게 '북두칠성'을 전파했다고.

"술자리 끝나고 취해서 주무실 분들은 주무시고, 감독님, (안)보현이 형, (남)상지 누나는 나와서 같이 '별 이쁘다' 하고 있는데 뭐 하나가 떨어지는 거예요. 잘못 본 줄 알았어요. 근데 또 '똑' 하고 떨어지는 거예요. 눈이 오는 거예요. 싸라기눈이 10분 정도 '삐죽삐죽'이라고 해야 하나. 내리는데 감독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따뜻한 봄에 만나서 겨울에 눈 오는 날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진짜 그런 것 같아서 행복하더라고요."

감독과는 별을 볼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자리를 옮길 때 감독님과 둘이 밤하늘을 보고 서 있었던 짧은 순간이 있었다며 또 하나의 풍경을 그려낸 그였다. 이창엽은 "외투 입으면서 '춥네요. 감독님. 별이 하나가 보이네요' 이런 대화를 하는데 감독님께서 '나는 동주가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롤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봤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어'라고 해주셨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감독님의 그 말이 큰 자신감을 갖게 했다"며 웃어 보였다.

이쯤 되니 궁금증이 밀려왔다. 왜 별을 보게 된 것인지. 그 시작은 5년 전, 캄보디아에서 한 달 간 봉사활동을 했던 22살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제일 좋았던 게 활동 끝나고 나서 드러누워 하늘 보는 거였어요. '내가 하늘을 본 적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밤에 한강에서 자주 뛰는데 그 이후로 하늘을 볼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는 건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뜻 아닐까요. 바쁘고 급하니까 사람이 자꾸 땅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여유가 생기면서 가슴도 펴고 하늘을 많이 보게 됐던 것 같아요."

뚝심의 '별 소년'은 "하고 싶은 예능이 있냐"는 물음도 별과 연관 지었다. "예능 정말 하고 싶다. 재밌을 것 같다"며 예능 욕심을 보인 그는 "웬만한 예능 잘 안 가리긴 하는데 김병만 씨 나오는 SBS '정글의 법칙'에 가서 같이 별을 보고 싶다. 별 보면서 북두칠성도 찾고 카시오페이아도 찾으면 재밌을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평범한 일화도 비범한 것으로 만드는 그에게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냐"고 질문했다. 천생 배우 아니랄까봐 그는 '직업 예찬론'으로 대답을 귀결시켰다. "'다음에 태어나면 이렇게 한 번 태어나 봐야지'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다음엔 세계 일주만 하는 탐험가가 될 거야. 특급 호텔의 요리사가 될 거야. 아니면 '007'에 나오는 첩보원이 될 거야' 되게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그러다 보니까 지금 제가 하는 이 직업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이창엽은 인간적인 배우를 꿈꿨다. 서울에 올라오면서 생겨버린 '차도남' 이미지와는 실제 정반대라는 그는 애교 많은 귀여운 막내의 '시골 감성'을 꺼내놨다.

"나름대로 애교도 많고 귀여운 막내라고 생각하고 자랐는데 막상 성인이 되고 보니까 제가 갖고 있는 에너지나 분위기가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큰 괴리감을 느꼈다"고 운을 뗀 그는 "엄마한테는 귀염둥이 막내아들인데 어디 가서는 쉽지 않더라. 주변에선 말 안 하고 있으면 차가운 느낌도 있다고 하더라. 난 '차도남'은 아니다. 낙동강 최남단 하굿둑에서 친구들이랑 강바람 맞으면서 새우깡 던지고 놀았던 기억밖에 없는 시골 사람이다. 도시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는 게 힘들고 친구들도 아니라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창엽은 "확실히 날 것 같고 촌스러운 부분들이 제가 살아온 27년 인생의 큰 감성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주변에서도 평소 성격과 비슷한 캐릭터를 만난다면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거야'라고 해주신다"고 덧붙였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건 기본인 것 같고요. 사람 냄새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전 촌에서 왔으니까. 바다 냄새나는, 그런 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